2023年11月にこのブログに載せた美術評論「朴芳永‐コリアンプリミティブ」を再度韓国語で載せました。
2023년 11월에 이 블로그에 실린 미술평론 '박방영-코리안 프리미티브'를 한글로 썼습니다.
●프롤로그 – 태초(太初)의 미술
약 1만 8천 년 전에 그려진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는 보는 이의 마음에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 벽화는 그것을 남긴 후기 구석기 시대의 크로마뇽인들이 높은 지성과 뛰어난 기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현대인에게 질문을 던져 온다. 동굴 벽에 생생하게 그려진 동물들은 원초적인 에너지로 가득차 있으며 그것은 우리들로부터 다음 1만년후의 미래 인류의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벽화
인류는 과학기술을 급격하게 발달시켜왔다. 그러나 높은 기술을 보유한 미래의 존재가 우리 현대인의 기술을 바라보았을 때, 그것은 현대인이 석기시대를 바라보는 것과 다름없이 보일지 모른다. 한편, 「예술」은, 동굴벽화처럼 시공을 초월하기에 퇴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술은 순수한 영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빛나는 영성의 빛과도 같다. 우리들이 미술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동은 작품을 보는 인간의 영성과 작품에 깃든 영성과의 공명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결코 지적인 작업이 먼저인 것은 아니다.
영성이란 하나의 정의로는 의식 깊은 곳에서 진동하는 파동 에너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벽화는 그것을 그리는 것으로 예술의 기쁨과 동시에 수렵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사적인 동기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런 순수한 동기로 그리는 그림은 원초적(primitive) 그리고 巫術‐무술(shamanism)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런 미술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된 것을 자극하여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그렇다면 여기서 예술작품에 깃든 에너지라는 관점에서 현대작가 박방영 예술을 바라보고 그 본질을 찾아보려고 한다
●코리안 프리미티브 아트 조선민화
한국의 조선시대 (1392년~1910년)에 독특한 미술이 있었다.
「조선민화」다.민화는 화조 산수 호랑이 등의 다양한 주재를 각각 다양화하여 그 작품을 장식하는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辟邪招福-벽사초복 (악한것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인다)의 의미를 담아 그렸다. 왕후귀족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랑받은 민화는 궁정화가나 전문화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오히려 떠돌이 화가인 비전문화가들에 의해 대량화 되었다
그러한 미술은 동양 삼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볼수 있지만 조선민화는 그 질과 양에 있어 압도적이다.
화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린 비전문화가들의 민화는 비록 서툴지만 독특한 멋이 있다. 그리고 보는자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원초적인 피를 들끓게하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조형적이로는 역원근이나 다시점에서 그려진 것도 있으며 실로 독특하고 재미있다. 그것은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을 초월하여 홀연히 이 세상에 너타난 처럼 참신함이 있다. 柳宗悦-야나기 무네요시는 민화의 책걸이도를 보고 “모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든다”라고까지 말했다.
■ 조선민화 책걸이도조선민화는 당시 인테리어 용도뿐만 아니라 그림에 담긴 길상의 의미를 누리고 복을 받는 것을 기원하며 방안에 걸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원하는 집에서는 씨앗이 가득있는 석류 열매를 걸어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랐다. 즉 민화를 그리는 사람도 주문을 하는 이에게도 길상을 바라는 소박한 기도가 있었다. 그것이 민화가 주술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조선민화 (비전문화가)
※위에서부터 벽사(액막이)의 대표격으로 있는 「호랑이그림」,운세와 가족의 화기애애를 상징하는 「봉황도」, 「화조도」의 연꽃
아프리카조각은 피카소의 큐비즘이나 앙드레 브르통이 주창한 쉬르레알리즘에 영향을 끼쳤다. 그와같이 민화도 현대의 한국 화가들에게 조형적인 영향을 주었다. 민화적인 조형을 자신의 작품에 차용하고 있는 화가도 많다.
그러나 박방영의 경우는 차용이 아니다. 민화에 내포된 원초적/주술적인 파동이 스스로 작품에서 숨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박방영은 원래는 서양화와 동양의 서예 즉 아카데믹한 미술을 배웠다.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현대미술에도 나아갔다. 이런 기반위에 서 있으면서도 형제 그의 작품은 비전문화가의 민화와 통하는 소박한 프리미티브 (원시적)인 맛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맛은 민화뿐만이 아닌 역사적인 유물등에서 볼 수 있는 민족적인 특징이다. 즉 박방영은 샤먼적인 소양이 있으며 작품을 그릴 때 자신의 내면에 있는 민족의 피에 의해 움직여진다.
소박한 선과 조형은 의식의 산물인 것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에서부터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박방영작품 (부분)
■제주도의 도조신 「돌하루방」
■朴芳永の書
●동양화의 기본 「서예」
박방영은 대학에서는 구상의 유화를 그리고 대학원에서는 「난지도」라고 하는 현대아트의 그룹을 결성하여 설치 작품에 도전했다. 그러나 박방영예술의 원점은 그가 어릴적 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서예」에 있다.
중국에서 한국 그리고 일본에까지 전해진 수묵화등의 동양의 전통회화는 「선」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동양의 회화는 부드러운 붓과 먹을 사용하여 종이 위에 자유로운 선으로 그려왔다.
붓으로 그어진 선은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기술과 정신성을 여실히 반영한다. 수묵화에 매료되었던 피카소는 동양의 붓을 사용하여 그렸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아마도 붓의 자유성을 손에 넣고싶었던 것이었을지도.
이 붓의 운필법의 기본은 「서예」에 있고 그것은 동양삼국의 모든 전통회화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 선은 그냥 평면적인 띠가 아닌 구체에서부터 원통에 연결되는 입체적인 요소를 갖는다.
따라서 동양화의 선묘에는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존재감이 있고 뒤에 설명하는 「기운생동」을 나타낸다.
박방영은 그러한 서예의 운필법을 완전히 숙련한 뒤에 그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대범한 선으로부터 섬세한 선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그릴 수 있지만 무의식에 이끌렸던 오토마티즘적인 선묘도 그의 작품 안에 나타나있다. 오토마티즘적인 선묘는 서툰 기술로 그려진 민화에서 볼수있다. 그것과 똑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민화의 대극에 있는 정통화(수묵화・문인화・ 서예)가 추구했던 숭고한 정신성이나 무위의 경지에서도 나타난다. 정통화에서도 모든 선이 의식 의해 통제되는 것은 아닐 것 같다.숭고함과 순수함은 통하는 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운생동을 불러일으키는 박방영의 선
예로부터 동양의 정통화인 수묵화와 서예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중국 5세기의 화가 사혁이 제시한 「육법」에 나오는 「気韻生動‐기운생동」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기운생동이 없는 수묵화와 서예는 단지 아름다운 図-도판이나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기운생동」의 의미는 작품 속에서 천지 즉 자연,만물,우주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약동하는 모습이라고나 말할까.
정통회화를 두고는 「기운생동」의 나타내는 방법은 화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높은 기술이 요구되었다.
그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민화- 비전문화가의 손에서 나오는 서투른 미술에서는 기술에 대한 의식이 거의 없지만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기운-에너지」가 확실히 있다.
정통회화와 민화, 이 두가지의 「기운-에너지」는 보는이의 내면 깊은곳에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의 의미로는 동질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조선시대말기의 한국에서 호를 秋史추사, 이름을 金正喜-김정희라고 하는 서예가가 있었는데 그는 예서에 가까운 「추사체」라고 하는 독특한 서체를 완성시켜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 추사의 글자는 붓을 마치 조각칼로 바꿔치기하여 쓴것과 같은 선묘의 강인함과 날카로움이 있어 보는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것이 바로 기운생동하는 서예다.
한편 현대의 서예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있는 박방영의 서예도 강한 힘이 있으나 예리한 추사의 서예와 비교하면 선도 서체도 부드럽다..더군다나 풀려나서 힘차게 약동하고 있다.
■秋史추사 金正喜김정희의 서예
●코리안 프리미티브‐朴芳永 PARK,BANG YOUNG
박방영의 그림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를 사랑스럽게 감싸 안고 있는 것 같다.
박방영이 그리는 그림의 매력은 그의 서예의 선에 짜여져 우러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고 그것이 그의 작폼의 조형을 떠받치고 있다.그것은 보는이의 영성에 공명하여 기쁨을 가져다준다. 박방영은 기운생동의 근원인 천지(우주)의 에너지를 끌어들여 자신의 내면에 울리게하여 작품 속에서 풀어낸다. 그 때 그의 내면에 진동하고 있는 것은 민족성의 뿌리내린 피에 잠재된 원초적이고 주술적인 에너지로 그것이 혼연일체가 되어 작품에 나타나면 그것을 보는 이는 공명되어 순간적으로 영혼을 떨리게 하는 진동 즉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朴芳永の書と絵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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